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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메시지

4.19혁명

by 릴렉스라이프 2018.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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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은 말 그대로 기념할 만한 어떤 일을 기리기 위해 만든 날이지요. 개인에게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다양한 기념일이 있습니다. 개인의 기념일과 다른 공공의 성격을 띤 기념일 중에서도 나라에서 여러 의미를 부여해서 정한 기념일을 국가기념일이라고 합니다. 즉 국가기념일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정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의 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철도의 날', '저축의 날', '4·19 혁명 기념일' 등 40여 개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국가기념일은 법정기념일이라고도 하며, 주관 부처에서 예산을 확보해 기념식과 그에 부수되는 행사를 전국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한편 국경일은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국가에서 법률로 정한 경축일을 말합니다.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 우리나라 5대 국경일이지요. "대한민국 국기법"에서 국경일은 전 국민이 국기를 다는 날로 정하고 있으며, 제헌절을 제외한 나머지 국경일은 공휴일입니다.


4·19 혁명 기념일은 '4·19 혁명의 정신을 기리고, 그 안에 드러난 민주주의의 이념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정의 사회를 구현하며, 혁명을 위해 스러진 희생자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4·19 혁명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 살펴볼까요?

4·19 혁명은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입니다. 당시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째 장기 집권 중이던 이승만 정부는 제4대 정 부통령 선출을 위해 실시된 선거에서도 반공개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을 저지릅니다.

2월 28일부터 불법적인 선거 유세에 반대하는 대구에서의 시위를 시작으로 서울, 대전, 수원, 부산 등에서 계속적인 학생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시위는 차츰 부정선거 규탄의 방향으로 향해갔지요. 선거 당일에는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함께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때 경찰 등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합니다. 이후 4월 11일, 마산 시위에서 실종되었던 마산상고생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바다에서 발견되어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

4월 18일에는 3천여 명의 고려대생들이  민주이념 쟁취를 위한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다 학교로 돌아가던 중 정치 폭력배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부상당한 학생들의 사진이 다음날 조간신문에 실렸고 드디어 4월 19일, 이를 본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총 궐기하게 됩니다. 시민들은 부정선거의 무효화, 독재 반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였습니다. 당국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를 앞세워 무력진압을 자행해 천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기에 이릅니다. 무력에도 굽히지 않는 시민들의 완강한 투쟁과 서울시내 각 대학교수단의 시국선언 등에 의해 이승만은 결국 대통력직에서 물러납니다.


최근의 우리 정치 상황을 바꾼 저력도 시민들의 조용한 분노였듯이, 1960년 4월 19일에 한국 민주주의가 한 발 전진하는 새로운 기틀을 마련한 것도 전국의 학생과 시민들이었습니다. 독재의 그늘과 부패한 정권에서 조용히 숨죽여 지내는 것처럼 보였던 민초들이 김수영 시인의 <풀>처럼 일어선 것이지요.

꼭 정치 상황에 한정해서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녀와 함께 4·19 혁명의 배경과 의의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면, 서울 도봉구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 4·19 민주 묘지를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직접 찾아가기 어렵다면 온라인을 통해 사이버 참배를 하거나 추모의 글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4·19 혁명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면, 직접 체험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2013년부터 시작된 '4·19 혁명 국민문화제'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와 4·19혁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체험 및 전시를 매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서울 강북구청 사거리~광산 사거리에 이르는 곳에서, 전야제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이트에서 행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물론, 4·19혁명에 대해서도 깊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출처] 기억해야 할 '4·19 혁명 기념일'의 배경과 의의|작성자 한우리독서토론논술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하였다. 그리고 1960.3.15 제 4대 정 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그러자 같은 날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당국은 총격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면서 고문을 가했다.

이후 1960.4.11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제 2차 시위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1960.4.18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했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다음날인 1960.4.19 총 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 "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여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1960.4.25 독재정권의 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 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 시민들과 시위에 동참하였고 1960.4.26 전날에 이어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은 무력에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여 이승만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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