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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메시지

상공의날에 대해 알아봅니다.

by 릴렉스라이프 2018.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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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의날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상공의날은 매년 3월 셋째 주 수요일. 1964512일 제1상공의 날행사가 개최되었으며, 대한상공회의소 설립공고일인 19531031일을 기념하기 위해 19721031일 최초로 상공인의 날행사를 거행하였다.

이후 1973년 각종 기념일 통폐합방침에 따라 발명의 날·중소기업의 날·계량의 날·전기의 날·상공인의 날을 상공의 날로 통합하면서 날짜도 1031일로 정하였다.

그런데 상공의 날1984년부터 매년 3월 셋째 주 수요일로 확정되어 기념식을 거행해오고 있다.

상공의 날은 기념식과 공장새마을전진대회를 병행하여 거행하였고, 상공업의 발전에 공로가 많은 상공인을 선발하여 포상하며, 재외 상공인을 초청하여 다과회를 개최하고 산업시찰을 실시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상공의 날 [商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공업은 언제부터 발달했을까요?

또 상공업을 진흥시키고자 주장한 학자들은 누가 있었을까요?

조선시대에는 백성을 사농공상네 계급으로 나누었죠.

사대부·농민·공장(工匠상인으로 나누어 계급을 분류했는데요.

사대부가 제일 존중받고 그 다음이 농민, 장인과 상인의 순으로 상공인은 가장 업신여김을 당했죠.

그런데 조선후기에 이르러서 국내 상공업이 발달하고 청나라 문물이 들어오면서 물질문화에 관심을 보인 학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상공업을 중시했기 때문에 중상학파라고 부르는데요.

중상학파 실학자들은 상공업을 업신여기던 당시의 풍조를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상업이나 수공업에 종사하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양반도 상업에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중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지원, 유수원, 홍대용, 박제가가 있는데요.

유수원은 상공업을 진흥시켜 나라 살림을 튼튼히 하고,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화와 전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노론 명문 출신인 홍대용은 사신으로 청나라에 왕래하면서 <임하경륜>, <의산문답> 등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요.

그는 신분 제도의 철폐, 기술 문화의 장려, 성리학의 극복이 부국강병의 근본이라 믿었습니다.

저서 열하일기로 유명한 박지원은 17806월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았습니다.

당시 그가 눈으로 확인한 청의 모습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오랑캐로 여기던 청이 조선보다 더 발전해 있었기 때문인데요.

박지원은 산천과 성곽, 배와 수레, 생활도구, 저잣거리 모습, 상품, 농사, 도자기 굽기 등

자기 눈으로 본 모든 것을 꼼꼼히 기록해 조선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이후 그는 상공업 진흥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박제가는 청나라에 다녀온 뒤 <북학의>를 저술해 청나라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상공업이 발전해야 나라가 부강해서 재물이 풍성해야 백성이 예의와 염치를 안다고 지적했죠.

이렇게 중상학파 실학자들이 상공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참고자료]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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